저지레를 저지르다 / IKEA 소파베드 우드스테인 칠하기 / 아이와 어른의 저지레

이케아에서 소파를 샀다. 엄마와 어무니가 손잡고 덴마크에 (언젠가) 오시겠다 했고, 현관만 내주면 잘수있다던 나의 친구들에게 현관만 내줄 순 없기에 소파베드를 샀다. 이케아에서 평이 그래도 제일 괜찮으면서 가격이 적당한 걸로.

우리집의 전등과 의자 색이 검정색으로 정해지면서, 앞으로 들어올 가구들을 블랙 앤 화이트 (앤 메이플 우드) 분위기로 맞추고 싶었으나 이 소파는 프레임이 밝은 내추럴의 소나무여서 이 색을 맞추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.

친절한 친구들과의 고민 끝에 흰/검 중에 검은색을 골랐고, 불투명하게 나무를 덮는 페인트보다는 우드스테인 검정색을 칠하기로 결정.

독일 아마존(독마존)에서 우드스테인과 스펀지 브러쉬를 사고 오매불망 기다림. 요즘 독마존 쓰면 2일 안에는 집까지 배송오더라.. 참 좋은 세상이다.

야심찬 준비

택배로 저녁 늦게 도착한 물건을 바로 뜯지 않고 옷방 구석에 넣어놨다. 며칠 후 우드스테인을 칠하고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드는 저녁이 왔다. 야심차게 준비를 마치고 무턱대고 칠해봤다.

검은 색이 스며들질 않고 왜 이렇게 깔끔하게 다 닦이는거에요?…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이케아 가구들은 표면 처리가 완료된 제품들이라 우드 스테인을 쓰려면 사포질을 해야한다고….

다음 날 Silvan에서 120, 320방 사포를 사왔다. 남편 출근하고 집에서 몰래 또 사부작사부작 해봐야지.

<2일 후>

시작은 항상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. 패브릭에 물들지 않도록 랩과 테이프로 감쌌다. 이건 참 잘했어요

열심히 사포질을 하고 스테인을 칠한 후, 1분 기다리고 나서 천으로 닦아냈다.

원목 나이테의 짙은 부분만 까맣게 물들고 나머지는 물들지 않았다. 사포질 한번 더 가자.

전체적으로 좀 더 물들긴 했는데.. 이게 맞나.. 싶다. 다른 부분도 다 비슷하게 무늬가 생기면 괜찮으려나..

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마무리. 뭔가 일을 저지르긴 했는데 당장 결과가 맘에 들지 않아서 남편에게 “맘에 들어…? 이상한 거 같지 않아…?” 하니 자기는 이대로도 예쁘고 완성해도 좋고 이대로 써도 아무 문제 없으니 내가 즐거운 대로 하라고 한다.

참 고마워 항상.


엄마한테 참 많이 들었던 말. 용례: “또 저지레 해놨네”

어릴 때 부터 저지레를 참 많이 저질렀다. 부모님이 사주신 공산품(필통, 가방, 신발, 책상, …)을 원 상태 그대로 두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. 초등학교 때 수채화 물감으로 필통을 색칠해놔서 가방에 물감이 다 묻어나오는 걸 엄마가 발견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, “아 이런 저지레를 하면 안되겠구나”가 아닌 “아 수채화 물감 말고 묻어나지 않는 물감을 사고싶다” 였다. 후에 아크릴 물감을 샀을 땐 필통, 볼펜, 온갖 것들을 칠해 의기양양하게 들고 다녔다. (그때 있었던 미피 캐릭터 분홍색 2단 필통은 빨강 뚜껑에 검정 몸통이 되도록 칠했었다. 지금 생각해도 나름 색을 잘 쓴듯.)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방 바닥에 온갖 재료를 펼쳐놓고 색칠하고, 오리고, 붙이고, 바느질하고, … 하며 새벽 두세시까지 잠을 자지 않아도 나를 가만히 내뒀다.

이렇게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은 저지레를 저질렀는데, 그 중에 맘에 드는 결과를 얻었을 땐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고, 먼저 보여주러 다니진 않아도 꼭 책상 끝에 내 완성작을 꺼내놓고 누군가 알아봐주길 원했었다. 하지만 맘에 드는 결과가 아닐 땐 그동안 들였던 시간이 버려진 것 같았고, 내 실력이 볼품없다는 걸 알리기 싫어서 그런 일은 없었다는 것 처럼 부숴서 쓰레기 봉투 깊숙히 넣어버렸다. 그러면서 점점 중간에 보이는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고 흔적을 없애버리는 식으로 자라면서 저지른 일들을 대응해 왔던 것 같다.

하지만 지금은 1) 저지레의 대상이 최소 2년 동안 써야 할 무거운 소파여서 없던 일로 할 수 없다는 것, 2) 오늘 다 완성하지 않아도 돼, 천천히 해, 지금 결과물도 괜찮아 하는 말을 듣는 것, 이 두 가지가 나를 계속 이 저지레에 책임을 지게 한다. 어린 아이 시절 내 저지레에 대한 내 대응은 은폐하고, 혼나고, 다른 사람 (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)에게 해결을 부탁하는 것이었다. 스케일도 작아서 책임도 작고, 주변 사람들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. 하지만 어른의 저지레는 소파처럼 스케일이 크고 버릴수도 없다. (그리고 이제는 수채화 물감이 아닌 좀 더 멋진 재료를 돈으로 살 수 있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– 덴마크에서 취직 전이니 아직은 내 돈은 아닌가 흠)

책임을 지고 끝까지 완성해서 어엿한 어른이 되어보겠다. 오늘 말고 다음에 사포질을 더 제대로 해서 완성해봐야지.. 대신 일주일에 나무 한판만 하기로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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